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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h/Note

Note ver. 121104

by choiss 2012. 10. 30.

작가노트 


  사진을 찍는다. 인터넷 기사나 영화를 보고 맘에 드는 장면을 캡쳐한다. 지금 난 유럽에 있다. 새로운 디자인의 자동차를 구경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이 촬영된 일상의 이미지를 보고 있다. 당장 그랜드캐넌도 가고 우주여행도 가능할 것만 같다. 이러한 가상공간의 경험을 통해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는 디지털 이미지들을 개인용 PC의 폴더 속에 수집한다. 디지털 사진으로 저장된 기록들은 또렷하지 않지만 기억의 파편처럼 작은 조각으로 나의 의식 속에 남아있다. 저장된 기록은 기억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물질화되어 인쇄물로 출력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기억 속 혹은 하드디스크 속에 모아놓은 이미지를 꺼내어 회화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내가 일상의 장면에서 포착하는 것은 크게 개인과 사회(인간과 환경), 사회와 사회, 대상과 대상 등의 관계이다. 특히 화면에 등장하는 객체와 객체끼리의 관계이다. 객체사이의 관계의 비밀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에 있어서 우리의 문명이 발전하는 것은 작은 부분에 그치지만 그 존재자체로 수많은 의미를 지니며 때로는 조화를 때로는 문제, 갈등을 낳는다. 관계와 관계, 갈등과 갈등, 존재와 존재는 어떤 섭리도 찾기 어려운 역학관계로 이루어진 듯하다. 내가 선택한 일상의 이미지는 대부분 불가항력으로 메시지를 지닌다. 정치, 경제부터 개인의 고민과 지극히 사적인 문제의 갈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 선택한 사진은 보는 이의 개인적 경험이나 지식에 따라 사진자체가 지시하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할 수 있는 해석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 단초란 우리사회의 만연한 인간의 통념과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이다. 즉 사진으로 걸러진 혹은 사진 너머의 인간의 이야기를 회화의 방법으로 탐구하고 드러내기를 바란다. 나의 회화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소외’의 상태에 놓여있다. 인간은 각각의 고유한 자주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각각 상대적으로 처한 상황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외의 많은 대상들도 문명의 발전으로 ‘소외’상태에 빠져있다. 각 대상들은 고유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 본질들은 서로 존재하며 충돌 혹은 조화 한다. 내가 그리는 일상들은 평온하지만, 조금만 관찰해보면 서로의 관계가 아이러니, 부조화, 선입견, 타성, 권력, 스트레스, 유머, 페이소스, 부조리 등 수많은 갈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이질적으로 상충하는 사항들로 인하여 각 대상들에 다른 생명력 즉, 상대적인 ‘존재감’을 불어넣고 ‘밸런스’를 주어 화면에 그려나가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일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일상적이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을 그려나간다. 즉,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대상에 각자의 독립성을 고려하여 이질적인 표현을 주며 그것들을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캔버스에 넣어 서로의 관계에 대한 경계를 ‘순환’시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캔버스나 종이 등의 회화표면이 하나의 세계로 독립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또 캔버스가 작은 세상인 것처럼 나의 회화를 관람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환기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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